이 세상에 같은 SUV는 없네.
기형도 시인의 '그집앞'이라는 싯구를 변형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같은 SUV는 없다'는 말은 혼다 파일럿 2세대를 표현하는 굉장히 적합한 말인 것 같습니다. 혼다 파일럿 2세대를 운행한지 약 2년여가 되어가는데, 도로에서 아직 한번도 동일한 차종을 만난 적이 없거든요. 3세대는 종종 보긴 합니다만 2세대는 정말 보기가 어렵습니다.
운행하는 2년 간 주차가 된 파일럿 2세대는 딱 2번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도로에서 파일럿 2세대를 마주칠 날이 있을까요? 그런 날이 오면 참 신기할 것 같습니다.
차를 처음 받은 날 남겨둔 사진입니다. 2015년에 약 3만km를 뛴 차를 엔카직영 중고매물로 구입하였습니다. 직영이라 믿고 그냥 돈을 보낸다음 집앞 탁송을 신청하니, 이틀만에 기사님이 차를 끌고 내려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편하더라구요. 차도 상태가 상당히 좋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진만 쭉 나열해 보겠습니다.
굉장히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하나하나 적어보겠습니다.
차를 운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입니다. 좀 노골적인가요. 하지만 자동차라는 물건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실용의 측면보다 본인을 내세우는 측면으로 많이 선택하게 되는게 솔직한 사실입니다. 파일럿 2세대는 외관이 정말 멋집니다. 처음 보면 약간 허머(Hummer) 스타일의 각진 모습이 돋보입니다.
특히 차를 앞에서 마주했을 때 본네트가 엄청나게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크다고 하는 우리나라 대형 SUV인 모하비, 렉스턴, 팰리세이드와 비교하면 10cm 이상 높은 것 같습니다. 키가 180 정도인 제 허리 위까지 본네트가 올라옵니다. 아침마다 출근하러 차에 다가갈 때마다 높은 차고를 보면서 마치 큰 말이 저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에서도 애마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파일럿 2세대는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얼마 팔리지 않은 차종입니다. 주차 등을 하다보면 종종 질문을 받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거 무슨 차냐', '되게 특이하고 크고 처음본다'는 평입니다. 대부분 좋게 봐주셔서 기분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희귀한 대형차를 타는 재미가 있습니다. 멋과 간지는 솔직하게 말해서 파일럿 2세대를 타는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으로 차량이 크기 때문에 트렁크가 상당히 큽니다. 차에 타본 지인들은 차가 굉장히 넓다는 말을 항상 합니다. 운전석과 보조석의 크기도 굉장히 여유롭고, 2열의 레그룸 간격도 상당히 넓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차를 탄 이후로 앞으로 작은 차로 돌아갈 생각은 없을 만큼 만족도가 높습니다.
한 예로,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남이 해외여행을 나갔다 오신 적이 있어 인천공항으로 파일럿을 끌고 픽업을 간 적이 있습니다. 갈때는 저와 와이프, 아기까지 셋이 갔고 올때는 여기에 여행다녀온 3명과 3명이 가진 대형 캐리어 3개까지 싣고 돌아왔는데, 평소 쓰지 않던 3열을 하나 열고 모든 짐을 수납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기 유모차까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파일럿 전에 끌었던, 같은 혼다의 한체급 낮은 SUV인 혼다 CR-V 4.5세대를 탈 때는 캠핑 짐을 열심히 테트리스 해서 넣어야 들어갔는데, 지금은 대충 싣고도 여유가 넘칩니다. 아기 유모차도 접지않고 그냥 가로로 넣어버리곤 하는데 참 편합니다. 큰 차를 탄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혼다 파일럿 2세대를 선택하기 전에 타던 차는 혼다의 CR-V 4.5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신차 운행 1년만에 출근길 4중 추돌사고로 전손처리를 하게 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추돌 중에 제 차는 3번째였고, 앞과 뒤가 모두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하나 없었구요.
사고에서 느낀 것이 확실히 일본차가 옵션 별로 없고 실내장재도 플라스틱 느낌으로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불의의 사고시에 결정적인 보호를 해 줄만큼 기본기에 튼튼한 차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달리고 잘 서고. 사고에서 탑승자를 적당히 보호해주고. 이것이 다음차로 또 혼다를 택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또한 사고에서 느낀 점이 정말 교통사고는 순간에 발행하고, 사람 목숨이 귀하구나 라는 생각에 SUV 덩치를 더 키웠습니다.
지금은 안전에 상당히 만족하고 타는 편입니다. 확실히 여러 사고에서 미루어보면 세단보다 차고가 높은 SUV가 안전하고 튼튼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혼다 파일럿 2세대는 약 3,500cc의 출력을 가진 차입니다. V6 6기통이구요. 저속에서는 2톤의 무게에 가까운 차체 무게 때문에 살짝 둔한 감이 있지만, 고속에서 밟으면 시원한 출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연비는 하늘나라로...
자동차 리뷰어로 유명한 까남 신동현 씨가 혼다 파일럿 2세대를 타보고 쓰신 시승평이 있어 참고로 남겨봅니다.
여러분들 혼다 파일럿 타봄???
혼다야 뭐 십년 전에야 사람들이 샀지만(우리 누나도 삼), 지금은 아아아아무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조이라이드 맨날 보는 사람들은 관심 안 갖는 차 아님???
근데 나 타보고 깜놀.
존나 조음.
'존나' 같은 말 내가 테레비도 나오는 마당에 안 쓸라고 했는데 진짜 존나 조음.
밟으믄 슈우우우웅 나감.
문제는 여덟명 탔는데 슈우우우우웅 나간다는 거.
평소에는 재미도 개성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 개솔린 V6 3.5리터 엔진이 이렇게 풍요로운 필링을 갖고 있다는 거에 깜놀함. 진짜 진짜 깜놀해서 충동구매할 뻔.
(인용 출처: 마른모들의 조이라이드 네이버 블로그)
배기량이 크기 때문에 따라오는 당연한 단점, 낮은 연비입니다. 제가 현재 타고 있는 연비를 측정해보면 정확히 8.0이 나옵니다. 타다가 트립 연비 초기화를 하고 8,000~9,000키로 정도 타보면 역시나 7.9~ 8.0이 나옵니다. 국산차와 다르게 일본차의 경우 뻥연비가 없는 편이라 실제 연비로 보시면 됩니다. 마카롱 등 자동차 연비측정 어플로도 꽤 기록해 보았는데 동일하게 8.0 수준입니다.
다만 저의 경우 출퇴근이 고속도로 70+시내 30이 섞인 측정치라 실제 타는 연비는 도심주행으로만 보면 6~7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길이 막힐 때는 3~4, 보통은 5~6정도 나오는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총 연비는 항상 8km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파일럿을 알아볼 때 실제 연비가 얼마나 나올지 상당히 많이 고민을 했고, 막연히 '아 그냥 평균 8km 정도만 나와주면 탈만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정확히 8이 나오니 저는 만족하고 타는 편입니다. 대형 SUV를 선택하는 순간 연비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타야 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안전 등을 보장받을 수 있기도 하구요.
<참고> 대략적인 유지비(유류비) 공유
저의 경우 주중에는 편도 23km, 왕복 총 46km 정도를 운행하고, 주말에는 잠깐의 나들이 정도 나갑니다. 그리고 한달에 1~2번 서울 등 편도 150km의 왕복 주행정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탔을 때 최근 월 유류비는 아래와 같습니다.
2020년 : 코로나로 유류비가 내리고, 운행 감소 - 월 20만원 내외
2019년 : 보통 월 35~40만원
덩치가 크다보니 사람이 이용하기는 편리하지만 주차할 때는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일반적인 주차장의 표준 사이즈에 주차하면 양쪽이 거의 꽉 끼어서 사람이 내리기가 좀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제일 끝자리에 조수석을 바짝 붙여서 대거나, 아파트에서는 그냥 주차선 아닌 곳에 댑니다. (저희 아파트 특수성인데 공간 대비 차량이 워낙 많아서 저녁이 되면 그냥 빈 공간에 차를 대곤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타는 단점 중 하나입니다.
잔고장 없는 일본차라고 해서 샀는데, 잔고장이 살짝 있습니다. 차는 역시 뽑기 운인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아래와 같은 소소한 잔고장이 있어 AS 한적이 있습니다.
■ 조수석 사이드미러 옆 에어컨 소음 (블로워모터 돌아가는 소음 발생) (무상교체)
: 이건 한번 고쳤는데 또 살짝 나네요. 부품 자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트렁크 자동으로 열릴 때 잡아주는 우측 에어 쇼바 소음 (무상교체)
정말로 '잔' 고장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고쳐보니 느낀 점이 부품 수급이 정말 어렵습니다. 희귀 차종 오너분이라면 다들 느끼실 불편함일 텐데요. 이렇게 한번 수리를 하게 되면 부품이 한국에 없기 때문에 진단 후 혼다코리아 서비스센터에서 일본으로 부품 주문을 넣습니다. 오는 데 대략 2~3주가 걸립니다. 또 가서 수리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 소모가 꽤 커서 불편합니다. (파일럿 3세대는 그나마 판매량이 있어 부품을 국내에 둘 텐데, 저의 2세대 파일럿은 아예 한국에 부품 재고 자체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혼다 파일럿 2세대는 순정 사이드미러 광각이 엄청나게 좁습니다. 저야 오래 타니 적응해서 숄더 체크로 차선변경 시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인데, 언젠가 아내가 한번 제 차를 끌어보고는 '이렇게 시야가 좁은데 어떻게 타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서워서 차선을 못 바꾸겠다고 하네요.
이렇게 문제가 있을 경우 보통 호환 부품 등으로 바꾸는 것이 차를 꾸미며 타는 맛이기도 한데, 이런 걸 못합니다. 워낙 판매된 차량이 적다 보니 부품사나 애프터마켓에서도 파일럿 2세대의 부품을 취급하는 곳이 없습니다. 저는 사이드미러 교체 없이 그냥 불편한대로 타고 있습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는데, 파일럿 2세대를 타는 순간 자발적 순정의 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튜닝하려면 모든 걸 별도로 커스터마이징해서 주문해야 하고 비용도 올라갑니다.
살면서 3대의 차를 거쳐갔고 모든 차는 탈 때마다 그 차 자체의 매력으로 재밌고 고맙게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파일럿 2세대는 그 희귀성 때문인지 제게는 탈수록 다른 차보다 더 애착이 생기는 차인 것 같습니다. 제 목표는 10년 후에도 잘 관리된 저의 파일럿 2세대를 지금처럼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 때는 정말 희귀한 클래식 카가 되어 있겠죠?)
이제는 엔카나 K-car에서도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매물의 레어템 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쪼록 안전하고 즐겁게 저의 애마 파일럿 2세대와의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파일럿 2세대 구매를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는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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